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Ver 14. Life is zero-sum game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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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형량 깍던 검사 :: 2012/01/25 09:24

/마이라이프/① 잡담




출처 : 클리앙

방망이 깎는 노인의 새로운 패러디네요.
이건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화수분 같은 아이템이랄까나...


벌써 일여 년 전이다.

내가 1등기업에 집착하면서 바쁘게 살 때다.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서초역에서 일단 마이바흐에서 내려야 했다.

서초역 쪽 길 가에 앉아서 기업들에게 떡 받아먹고 사는 검사가 있었다.

비자금이 하나 걸려가지고 좀 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.

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. 좀 싸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,

"소송 하나 가지고 값을 깎으려오? 비싸거든 감방에서 오래 살아보시우."

대단히 무뚝뚝한 검사였다.

더 깎지도 못하고 아무쪼록 빨리 풀려나게 해달라고만 부탁했다.

그는 잠자코 열심히 구형 형량을 깎고 있었다.

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,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,

이내 마냥 늑장이다. 내가 보기에도 그만하면 다 됐는데, 자꾸만 더 깎고 있다.

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.

언론에 다루어지고 있으니 빨리 해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. 점점 여론이 좋지 않아졌다.

갑갑하고 지루하고,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.

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하라고 했더니, 화를 버럭 내며,

 "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,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?"

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. 나도 기가 막혀서,

 "(감방서)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단 말이오? 영감님, 외고집이시구려. 여론이 안 좋아진다니까……."

검사는

"다른 검사 알아보시오. 난 안 하겠소."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.

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,

여론은 어차피 안 좋아진 것 같고 해서, 될 대로 되라고 체념(諦念)할 수밖에 없었다.

 "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."

 "글쎄,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. 형량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, 깎다가 놓으면 되나?"

좀 누그러진 말투다.

이번에는 법전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룸살롱에서 텐프로를 불러 즐기고 있지 않은가?

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.

얼마 후에, 검사는 또 깎기 시작한다. 저러다가는 형량이 다 깎여 없어질 것만 같았다.

또, 얼마 후에 법전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 보더니, 다 됐다고 내준다.

사실,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형량이다.

언론에 소문이 나고 여론이 안 좋아진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.

그 따위로 일을 처리해 가지고 재판이 유리하게 잘 될 턱이 없다.

손님 본위(本位)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. 불친절(不親切)하고 무뚝뚝한 떡검이다.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.

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, 검사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룸살롱의 미녀를 바라보고 있다.

그 때, 어딘지 모르게 섹검다워 보이는,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,

그리고 부드러운 눈매와 양주에 젖은 입술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.

검사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.

회사에 와서 형량을 내놨더니, 변호사는 잘 깎았다고 야단이다.

자신이 깎아도 이것보다는 잘 못 깎겠다는 것이다.

그러나 나는 그 검사가 잘 깎아준 것 같지가 않았다.

그런데 변호사의 설명을 들어 보면, 형량이 너무 길면 법무부장관이 특별사면을 해 줄 때,

같은 재벌이라도 힘이 들며, 형량이 너무 적으면 여론이 너무 기세를 부리므로,

기업의 앞길이 잘 펴지지 않고 이미지를 망치기가 쉽다는 것이고,

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.

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. 그리고 그 검사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. 참으로 미안했다.

옛날부터 내려오는 재건축현장은, 정치인들과 룸에서 양주나 마시고 안주머니에 돈봉투를 넣어준 뒤,

주먹들 불러서 빈민들 좀 족치면 되었다.

그러나 요사이 건설현장은, 집회시위가 곧잘 보도되어서 옛날보다 힘이 든다.

그런 점에서 용산참사 희생자 이름도 모르는 오세훈이 다시 서울시장이 된 것은 반길만한 일이다.

협정(協定)만 해도 그렇다.

옛날에는 (박정히)대통령이 일본이랑 몰래 말도 안되는 협정을 맺어도

반대하는 대학생들이나 감방에 넣어버리면 되었다.

근데 요즘은 쇠고기의 ㅅ자만 들어도 스트레스가 다시 도지는 것 같다.

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, 생계(生計)는 생계지만,

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싸구려 원자재로 폭리를 취한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.

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. 그렇게 노동자의 심혈(心血)을 빼서 공장(工場) 생산품을 만들어 냈다.

이 구형량도 옛날을 그리워하는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.

나는 그 검사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.

그 따위로 해서 무슨 떡검을 해 먹는담." 하던 말은

"그런 떡검이 나 같은 기업인에게 떡과 여자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거래가 탄생할 수 있담."

하는 말로 바뀌어 졌다.

나는 그 검사를 찾아가 룸에서 양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.

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(上京)하는 길로 그 검사를 찾았다.

그러나 그 검사가 앉았던 자리에 검사는 와 있지 아니했다.

나는 그 검사가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. 허전하고 서운했다.

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.

맞은쪽 룸살롱의 미녀를 바라다보았다. 푸른 눈을 가진 러시아의 미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.

아, 그 때 그 검사가 저 외국인을 보고 있었구나.

열심히 형량을 깎다가 유연히 외국의 미녀를 바라보던 검사의 욕망에 가득찬 모습이 떠올랐다.

오늘, 안에 들어갔더니 변호사와 회계사가 자료를 뒤지고 있었다.

전 변호사에게 배신당한 생각이 난다. 법원을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.

요사이는 경영권을 승계할 생각에 들떠 있다.

애수(哀愁)를 자아내던 그 사건도 이미 오래다.

문득 일여 년 전, 형량 깎던 검사의 모습이 떠오른다.

안군
2012/01/25 09:24 2012/01/25 09:2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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